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문단 편집) === 만국박람회 === 이형이 낸 아이디어로 전주에서 개최되기로 하였는데 이는 서울이나 부산쪽은 나중에 산업화로 반드시 발전하게 되니 전주가 이에 뒤쳐지면 그래도 황가의 시조가 되는 땅인데 낙후된 시골이면 곤란하니 문화도시로라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전주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첫 박람회는 이형 즉위 30주년을 맞아 전주에서 개최된 아주 최대의 국제행사였으며 유럽의 세계대전 여파로 유럽은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구색만 냈다. 때문에 유럽 지식인들은 아주인들만의 모임이나 마찬가지인 아주 박람회라고 비하하지만 아주 지식인들은 이제 아주가 유럽 없이도 당당히 세계적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첫 박람회는 세계대전 도중이었기에 정부에서도 많은 우려를 하여 유럽은 몰라도 아주의 관람객이라도 끌어들이고자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보내거나 교통비를 일부 부담하는등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이에 무색하게 유럽에서도 제법 많은 참가자,관람객들이 모였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전쟁 때문이었다. 정부들은 전쟁에 바빠 이름만 올리거나 사소한것만 만들어 구색을 냈지만 민간인들은 달랐는데 부자들은 피난을 위해서,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서 '만국박람회에 참가하여 우리 나라의 이름을 알리는것 또한 애국' 이라는 구실로 민간참가자로 전시품을 채웠고 중산층이나 하층민들은 아시아까지 가면 징병관들이 오지 않으니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관람객이 되어 온것이다. 대한제국이 전혀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대만에서 시작해 일본의 지지를 얻고, 상해에서 설립된 아주예술위원회가 앞장서서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끝에 공자-석가-옥황 등의 아시아의 갖가지 종교의 성인과 신들이 모인 만신전이 만들어지고 전주에 모인 예술가들로 전주가 예술의 도시로 화하는 등 갖가지 호황을 이끌어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